동네 아파트에 약간은 늦은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핸드폰에 담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장관이었습니다. 사진이 아무리 좋아도 눈으로 직접 보는 감동만큼은 아닌 듯하네요. 낮보다 밤에 본 목련은 더 화려하고 눈부십니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흰 꽃잎들이 더욱 하얗게 빛이 납니다. 앙상한 가지마다 손바닥만 한 하얀 꽃망울을 한가득 피워낸 목련의 하늘거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경이롭네요. 목련은 이렇게 봄의 마중물의 존재로 빛납니다. 왜 목련은 이렇게 일찍 화려하게 피어나는 걸까요?
목련은 꿀벌 같은 수분 매개체가 존재하기 전부터 진화된 고대 식물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목련은 꿀벌이 아닌 다른 곤충에게 의존하여 수분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다른 꽃보다 훨씬 먼저 개화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습니다. 꿀벌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매개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목련은 강한 향기와 크고 화려한 꽃망울이 필요했죠. 더 빨리 피고 더 화려한 모습을 통해 다른 꽃들에서 수분 매개체를 빼앗기기 전 모든 과정을 마무리합니다. 빨리 피우고 수분을 마무리하게 되면 최대한 빨리 목련은 모든 에너지를 종자 생산과 다음 성장기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전화하여 생존의 힘을 키우게 되죠. 목련의 빠른 개화는 성공적인 수분과 번식을 보장해서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도록 도와준 진화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목련은 처연하게 집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꽃잎들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바닥에 쌓인 꽃잎들 금세 짙게 썩어 갑니다. 화려했던 며칠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진화가 만들어낸 목련의 생존전략과는 별개로 그저 좀 안타깝습니다. 자연의 과정에 감정을 들이대는 게 목련에겐 사실 억울한 노릇이긴 할테지만, 우수수 떨어져 썩어 문드러지는 목련의 큰 꽃잎들을 바라보노라니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마치 자신을 버린 어미에 대한 슬픈 눈물의 흔적 같습니다.
4월입니다. 이른 벚꽃들도 떨어지며 푸른 잎사귀로 바뀌어 가는 계절입니다. 제가 서운하든 말든 상관없이 봄은 오고야 마네요. 어느새 성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