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복순이 회사가 명령한 작품(살인청부)을 고의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하면서 영화의 긴장감이 본격적으로 고조됩니다. 살인은 사실 내키지는 않지만 킬러에겐 철저히 업무의 과정일 뿐입니다. 감정의 동요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프로 직업인이 가져야할 덕목입니다. 하지만 딸 아이와의 갈등이 길복순 인생에 처음으로 작업을 하는데 머뭇거리게 되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킬러들의 세상에서는 아주 커다란 오점이 되고 고객과의 신뢰로 먹고사는 킬러 기업에겐 있을 수 없는 사태입니다. 그래서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파국의 결말이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큰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한 다음 펼쳐지는 세상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영화의 엔딩은 소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그만.
길복순이 자신의 일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순간, 갈등이 시작되고 그곳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우리도 그렇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에 대해서 의문과 질문을 던지는 때가 언제가는 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정말 내가 원하던 그 일인가? 나는 지금 이 일을 통해서 행복한가? 나는 누구이고,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 수록 이런 화두는 더 크게 울려 퍼집니다. 故구본형 작가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어느 새 익숙해져 버린 일상과 결별할 때는 언제가는 옵니다. 데미안의 표현처럼 새는 알을 깨고 나오는 그 순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