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3 Body Problem)’가 인기죠. ‘삼체’는 중국 작가 류츠신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SF 시리즈입니다. 전 무척 재미있게 봤는데요. 제가 원래 SF 관련 콘텐츠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아시아 최초로 휴고상을 받은 SF 거장의 대표적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출시 전부터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삼체’는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인에 맞춰 싸우는 인류의 고군분투의 이야기입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시겠지만 ‘삼체’는 다른 외계인 시리즈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지구까지 400년이 걸린다.
‘삼체’는 3중 항성계를 태양으로 가진 알파 센타우리의 외계 문명을 말합니다. 태양이 3개라서 기본적인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주기적으로 문명이 리셋되는 혹독한 환경에서 삼체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결국 생존의 방법을 찾았고 엄청난 기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지구로부터 온 신호를 받고 지구가 훨씬 더 살기좋은 행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류보다 훨씬 더 발전한 삼체인들이 걱정하는 것은 인류의 발전 속도입니다. 삼체인들이 지구까지 오는데 4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현재 지구에 사는 인류가 보여주는 기술의 발전 속도라면 앞으로 400년 후에는 자신들과 대적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삼체인들은 지자(Sophon)라고 불리는 양성자 인공지능을 지구로 보내서 지구인이 과학을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AI의 발전속도
삼체인의 판단처럼 정말로 인류의 발전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예전같으면 수십 년이 걸릴만한 변화가 불과 몇 년 사이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구요. 최근의 AI 발전의 속도는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넷플릭스가 1억명의 가입자에 도달하는데 10년이 걸렸다. ChatGPT는 불과 2개월만에 이를 달성했다.
그런데, 이런 AI의 발전속도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들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AI 선각자의 경고
무스타파 슬레이만(Mustafa Suleyman)은 딥마인드의 공동 창립자이고 AI 생태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인물 중 한명입니다. 최근 마이트로소프트(Microsoft)에 AI 총괄 CEO로 선임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집니다. 슬레이만은 ‘더 커밍 웨이브 The Coming Wave’라는 책을 통해 러다이트 운동을 다시 언급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러다이트 운동은 19세기 초 직조 기계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이 산업화에 반대해 벌인 반란 운동입니다.
“러다이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미래를 만드는 데 실패했고, 오늘날 기술을 억제하려는 사람들 역시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커밍 웨이브’ 중에서
19세기에 실패한 운동이 21세기 AI 시대에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슬레이드만은 처음부터 제대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다. 산업 혁명 때처럼 사람들이 기술에 적응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 애초에 기술이 사람들이나 사람들의 삶과 희망에 부합하도록 조정해야 한다.”
‘더 커밍 웨이브’ 중에서
유럽이 AI 규제를 시작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의 첫 번째 AI 법안이 통과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난 3월13일에 법안 표결이 통과한 ‘AI 규제법 (AI Act)’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생체 정보 수집이 엄격히 제한되고, 개인의 특성과 행동을 데이터화해서 점수는 매기는 등의 프로세스가 금지되는 최초의 AI 규제 법안입니다.
AI 서비스의 위험도를 4단계로 나눠서 차등규제하는 기준을 마련했고,
사람의 지능을 모사하는 AGI를 개발함에 있어서는 기업은 규정된 ‘투명성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또한 AI로 만들어진 영상, 이미지 등의 콘텐츠에는 반드시 ‘AI로 만든 콘텐츠’라고 표기하도록 했습니다.
AI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체적으로 박수를 보내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고 있지만, 반명 지금처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의 AI 규제법은 빠르게 ‘구식’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인간의 반격
다시 ‘삼체’ 애기로 돌아가 볼까요? ‘삼체인’들이 지구로 보낸 ‘지자’ 때문에 인류는 제대로된 방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자가 인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관련된 정보를 ‘삼체’ 함대에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죠. 고민 끝에 인류는 ‘면벽자’ 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게 됩니다. 인류 중에서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서 가장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3명 (소설에서는 4명)을 선별해서 이들에게 가장 막강한 권한과 권력을 줍니다. 다만 이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절대로 말하거나 기록을 남길 수 없습니다. 삼체인들이 사람의 생각만큼은 꿰뚫어 볼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말을 하지 않는 3명의 영웅을 통해 삼체인들의 공격을 대비해 내자는 프로젝트입니다. ‘면벽자’ 프로그램에 선출된 ‘소울’ (소설에서는 뤄지)을 통해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삼체인들의 침공에 대비하고 준비해나갈 지 앞으로 나올 시즌2가 궁금해 집니다.
폭주를 잠시 멈추자.
기술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과 사회를 바꿔어 놓고 있습니다. 특히나 AI의 발전은 놀라움을 넘어 무서운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마치 군비경쟁처럼 AI 기술의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여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능이 쏟아지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의 AI 법안과 같은 자정 노력이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아직은 비록 부족하고 헛점 투성이라 하더라도 가이드 없는 기술의 폭주를 일단 한번 멈춰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 서서 우리의 방향과 상태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슬레이만은 ‘더 커밍 웨이브’에서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기술이 다가오는 미래를 만드는 데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기술이 미래의 핵심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