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는 저자는 마케팅 데이터를 분석해서 고객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위 ‘퍼널’의 과정 속에서 마지막 '전환'을 달성하는 것이 그의 미션이자 사명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겁니다.
"이게 다 뭐지? 이렇게 성장한다는 게 꼭 좋은 일인거야?"
Lean Logic 는 영국의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플레밍의 책입니다. 성장의 한계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담겨있는데요. 모든 것은 성장하죠. 어린이는 어른이 되고, 묘목이 나무가 되듯이 말이죠. 하지만 어떤 한계 지점을 넘어서면 성장은 오히려 ‘병리’이며 ‘고통’이라고 정의합니다.
성장하는 경제 시스템은 그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고, 더불어 소비도 계속해서 늘어나야 합니다.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오히려 시스템의 비효율성이 높아지는 ‘강화의 역설’이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되죠. GDP를 올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데, 더 열심히 일할 수록 더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이 무한반복의 상황이라니요. 플레밍은 결국 성장이 축소되는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예고했습니다. 성장이 축소되면 지금의 시스템으로 무장한 기업들은 살아날 방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성장의 패러다임이 아닌 다른 측면의 가치관, 회복탄력성 Resilience 입니다.
회복탄력성에 대한 가장 간단한 정의는 ‘시스템이 충격에 대처하는 능력’입니다. 강력한 변화나 충격 속에서도 재빨리 안정을 되찾아가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죠.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기업과 개인에게 필요한 자질은 변화에 끊임없이 추종하기보다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안정된 밸런스를 찾아내는 능력, 회복탄력성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회복탄력성의 지표는 찾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상상하죠. 어떤 시스템이 이런 회복탄력성과 밸런스를 측정할 수 있어서. 성장이 너무 높아졌다는 시그널이 나타다면 ‘느려져야 합니다. 성장을 중지하세요’ 라는 알람이 뜨는 겁니다. 이런 시스템은 아마도 파트너들과의 관계, 교환의 효율성, 대여나 재사용 등의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삼고, 회사의 회복탄력성을 탄탄하게 만드는 모든 비거래 활동들을 반영하는 시스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실제론 구현하기 어렵겠죠.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채팅앱을 만든다고 해보죠. 성장의 측면에서 봤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채팅앱을 사용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회복탄력성의 측면에서는 그 성장이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채팅앱을 끄고 실제 사람들을 만나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는 비율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이런 기업이 가능할까요?
김주환 작가의 ‘회복탄력성’이란 책이 있습니다. 개인의 관점에서 회복탄력성이 무엇이고, 왜 중요하며, 어떻게 회복탄력성을 높힐 수 있을지를 설명한 책입니다. 꽤나 잘 쓰였고,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해 드립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성장과 밸런스라는 두 가지 척도를 잘 믹스해서 변화 속에서도 성공적인 자기 관리를 해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특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지속가능성 이라는 화두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ESG 경영 방침은 이러한 지속가능성을 기업의 정책에 대입해서 사회적으로도 기여하면서 기업의 장기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다는 측면에서 권장되고 있고 중요한 척도가 되어가고 있죠. 그런데 아직도 명확한 실천 전략은 더디기만 합니다. AI가 세상을 휩쓸고 있고 기술의 발전이 이제는 일상의 모든 측면을 휘감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지수함수적으로 빨라지고 있고요.
자본주의 체계 하에서 성장은 기업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기업은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 악전고투를 벌입니다. WIRED 기사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퍼널의 데이터를 고객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쥐어짜야 하는 겁니다.
쥐어짜는 세상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회복탄력성이 떨어져 변화에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는 저질 체력의 기업이 됩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기업의 입장에서도 회복탄력성이라는 유무형의 가치를 실천하면서, 너무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기업 고유의 가치를 찾아내고 성장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지표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성장만이 유일한 덕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롭게 하면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기업과 시스템의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