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모 피글리우치의 <가장 단호한 행복>을 읽었습니다. 삶 속에서 실천적인 철학을 추구한 스토아학파, 특히 노예철학자로 알려진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을 지금의 시선에서 정리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없습니다. 최선의 노력으로도 성공을 보장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불행합니다. 건강, 좋은 인간관계, 적당한 재산 등 필수적인 행복의 기본조건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많은 부분 마음가짐에서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할까요?
다시 궁수의 화살로 돌아가 봅니다.
과녁을 맞추는 것이 궁수의 최종목적이 되는 순간부터 궁수는 불행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궁수가 최선을 다해 과녁을 맞추려 노력해도 항상 목적을 달성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갑자기 돌풍이 불 수도 있고, 미세한 흔들림으로 과녁을 빗나가는 상황은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서 바로 여기에 통제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스토아학파가 주장하는 행복을 위한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궁수의 화살의 문제에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화살을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까지 입니다. 시위를 당깁니다. 흔들리지 않도록 집중합니다. 숨을 참고, 과녁을 정확히 조준한 뒤, 활을 놓습니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바로 여기까지가 궁수가 간절히 바래야 하는 최종 지점이자 목표입니다.
시위를 떠난 활이 과격에 명중하는 것은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행히 운이 좋아 과녁에 명중할 수도 있지만, 불행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결과에 따로 우리의 자존심과 삶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태도. 화살을 정확히 조준하기 위해 노력한 그 과정들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 이 둘을 구분하여 결과에 상관없이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행복을 향한 단호한 방식입니다.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열심히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을 모두 이루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이 바라는 바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살다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입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온전히 자신의 노력에 따라 행복한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수 있도록 내 생각과 마음의 과정을 새로 정립하는 것이 어쩌면 행복에 다다를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