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쩌면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비슷하게 자신에게 속삭이게 되지 않을까요?
내 인생은 과연 뭐였을까? 난 내 인생에서 뭘 기대했을까?
<스토너> 책표지. 초판본이 2020년 새로 출간되었다. 1995년 출간된 표지가 사실 더 맘에 든다.
소설 <스토너>는 존 윌리엄스가 1965년에 미국에서 발표한 소설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소설이 1994년 존 윌리엄스가 죽고도 20년이 흐른 2013년에 이르러서야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새롭게 주목받았습니다. 무려 50년이 지난 다음에야 말이죠.
<스토너>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재미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에겐 드라마틱한 인생의 굴절도 없고 용기도 없고 스토리의 반전도 없습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꽤나 지루한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스토너>의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스토너>의 줄거리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지만, 영문학개론 수업을 통해서 문학의 길로 접어 들게 됩니다. 사랑 비슷한 감정으로 이디스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지만 평생 잘못된 결혼 때문에 후회합니다. 교수가 되어 교육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가르침의 열정은 인생의 후반부에 반짝하고는 사그라 듭니다. 출세보다는 학문과 교육의 성취를 위해 헌신하지만, 가정의 행복에도 실패하고 학교 정치에서도 밀려 고난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제자 캐서린과의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를 통해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지만, 세상의 삐딱한 시선과 이목 그리고 동료교수 로맥스의 훼방으로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집니다. 사랑을 붙잡을 용기도 그에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랑과 이별한 이후에도 인생의 작은 만족과 슬픔과 외로움을 감내하며 나이들며 인생이 서서히 사그라듭니다.
존 윌리엄스 (1922~1994) 1965년 출간한 <스토너>는 50년이 흘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스토너가 실패한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스토너>는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로 나눌 수 없는 우리 보통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나, 번번히 실패와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우리의 살아냄.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 있었고, 가르침의 보람을 느꼈으니 행복의 순간들이 없지는 않았던 삶. 인생을 통틀어 절대 올 것 같지 않던 사랑의 열망도 느낄 수 있었지만 더 큰 쓸쓸함과 아픔으로 남을 뿐이었던 기억들. 가족 관계에서 행복할 수 없었고, 풍성한 인간관계도 빈약했지만, 그렇지만 누가 스토너의 삶이 실패했고 의미없다 말할 수 있을까요?
<스토너>를 읽다보면 이런 늦가을의 정물화가 생각이 난다.
우리같은 평범한 존재를 위한 찬사
<스토너>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존재감은 없고 결코 성공했다는 말을 하기 힘든 한 영문학 교수의 인생을 담담히 써내려간 소설입니다.
하지만 <스토너>를 다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먹먹해 오는 슬픔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정제된 표현과 담담한 문체를 통해 '보통'과 '평범'한 인생에 대한 찬사로 빛나는 소설입니다. <스토너>는 평범하게 살아가다 떠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며 도닥입니다. 그리 용감하지도 못하고 특출나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간 작은 존재들을 위한 아름다운 내러티브입니다.
아련한 죽음
암에 걸려 윌리엄 스토너는 죽어 갑니다.
<스토너>의 마지막 챕터는 죽어가는 윌리엄 스토너의 내면을 어루만지며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력이 쇠하여 점점 희미해져 가는 의식 끝에서 인생 전체가 흐트러집니다. 따스한 봄기운의 햇살과 세상에 남겨질 자신의 책을 어루만지며 서서히 사라져가는 장면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문학작품을 통틀어 가장 아련한 죽음의 과정입니다. 저도 어쩌면 이런 죽음이면 좋겠다 싶습니다.